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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협동조합의 운명은 민주적 운영 능력에 달려 있다_박태순 사회갈등연구소 소장  
작성자 rosa
작성일 2013/05/14
ㆍ조회: 3665  

협동조합의 운명은 민주적 운영 능력에 달려 있다

                  박태순 사회갈등연구소 소장

작년 12월 협동조합기본법 시행 이후 협동조합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3월말까지 정부에 접수된 신청건수만 850여건을 헤아리고 있고, 박원순 서울시장은 작년 7월 “앞으로 10년간 서울에 8000개의 협동조합이 서도록 지원하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말 그대로 협동조합이 붐을 이루고 있다. 일자리 창출 때문에 고민이 많던 정부나 지자체로서도 시민이 스스로 돈을 모아 사업을 하겠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정부와 지자체도 여러 가지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협동조합이 이렇게 ‘붐’을 이루게 된 데에는 그만한 배경이 있다. 우선 그동안 음지(?)에서 협동조합을 위해 묵묵히 일해 오면서 협동조합의 제도화를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였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보면 이 사회에서 이런 저런 이유로 배제되거나 소외된 사람들이 그 만큼 많았다는 현실을 방증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협동조합에서 마지막 길을 찾고 있다.

한편으로 다행스럽고 반가운 일이기도 하지만, ‘협동조합, 이게 만만한 일이 아닐 텐데’ 하는 생각에 걱정이 앞선다. 들어가는 문은 넓어졌으나, 그 끝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누가 죽고 누가 살지 아직은 장담할 수 없다. 그렇다고 미리 걱정만 할 필요는 없다. 성공하는 협동조합이 되기 위해 필요한 내용이 무엇인지를 미리 알고 준비하면 위험은 그만큼 줄일 수 있다.

협동조합이 무엇인지는 차치하고, 많은 사람들이 기업으로서 협동조합이 살아남기 위한 조건으로 돈(자금), 기술(상품 경쟁력), 경영능력(운영능력)을 말한다. 그런데 협동조합을 만들겠다는 분들을 만나보면 돈이나 기술에 대해서는 이전 저런 걱정을 하고, 준비를 하면서도 협동조합의 경영(운영)에 대해서는 별 걱정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참 걱정되는 대목이다.

협동조합은 본질적으로 돈(자본)에 의해 사람이 모인 조직이 아니다. 필요한 일을 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 재원을 마련하면서 시작되는 조직이다. 소위 법인(corporation)이 아니라 참여자 공동의 목적을 추구하는 인적 결사체(association)다. 그것도 낸 돈에 차별을 두지 않는 수평적 인적 결사체다. 모두가 의결권을 갖고 모두가 주인인 기업이다.

‘수평적 인적 결사체’ 참 의미심장하고 생각할수록 난감한 말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삼강오륜(三綱五倫)으로 대표되는 권위적 위계사회에서 살아왔고, 전보다 훨씬 약화되긴 했어도 이놈의 수직적 문화유전자(meme)가 우리 일상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 참여와 수평적 논의를 통한 의사결정과 합의(consensus)는 아직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다. 잘 안 된다.

또한 우리는 지난 반세기 이상 ‘돈이 곧 힘(영향력)’인 사회에서 살아왔다. 돈만큼 발언력이 있고, 돈만큼 대우를 받는, 돈 중심 사회에 살고 있고, 싫든 좋든 돈이 계급인 사회에 이미 익숙해져 있다.

위계와 돈이 지배해온 사회에서 수평적 논의를 통한 민주적 결정은 가능한가? 협동조합의 미래를 낙관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협동조합의 성공은 우리에게 버거운 과제일 수밖에 없다. 최근 협동조합 운영과 관련하여 발생한 OO생명살림과 OO살림농산 관련 갈등은 이런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1976년 OO 상수원 지역 유기 농업생산자에 의해 시작된 OO생명살림 생협은 이제 조합원 6000명이 넘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생협이 되었다. 그런데 작년 이사장 선출과정에서 일부 직원들이 특정후보를 비방하는 연판장을 돌리면서 내홍에 휩싸여 1년 이상 이사회가 기능정지 상태가 되었다. 아직도 이사장, 이사회, 직원, 조합원간 문제해결에 대한 입장차이로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1년 이상 가동정지 상태에서도 조합원은 계속 늘어나고 있으나, 직원의 권한이 이사장 선출에 직접 개입하는 수준이 되었고, 이사회는 현 이사장을 옹호하는 사람과 비호하는 사람으로 패가 갈렸다. 이사장은 이사회에서 결의한 사항을 아무런 설명 없이 뒤집고, 조합원의 의견은 쉽게 무시되고 있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OO농산은 2008년 6월 ‘OO한살림소비자생활협동조합’에서 분리된 기름가공 협동기업이다. ‘OO농산은 OO한살림생협이 주축이 되어 설립하였지만 설립 당시에는 협동조합기본법 등이 없어 부득이 상법상 주식회사 형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형식은 주식회사이나 지금까지 1인 1표의 협동조합적 운영원칙을 지켜왔다.
그러던 것이 지난 3월 OO농산 정기총회 진행과정에서 상임대표 등이 상법에 위배된다는 논리를 내세워 지금까지 유지되었던 협동조합 방식의 1인 1표를 버리고 주식비례제를 채택하여 이사장을 선출하게 된다. 협동조합 방식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인사들과 갈등이 발생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문제를 지적하고 비난하기 위해 사례를 든 것이 아니다. 위의 두 사례는 우리에게 조직을 민주적으로 운영한다는 것이 결코 만만하지 않으며, 아무리 잘 나가던 조직도 각별한 노력과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한, 어느 누구도 이런 위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사람마다 협동조합을 보는 관점에 차이가 있고, 협동조합을 통해 얻고자 하는 기대가 다르다. 규모가 커지면서 고려해야할 변수가 많아지고, 의사결정의 효율성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역할과 기능이 분화된다. 이와 함께 정보 유통과 의사결정 권한에 차이가 발생한다. 자연스럽게 정보와 권한의 집중과 소외가 동시에 발생한다. 경쟁과 효율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조직에서 늘 있는 모습이다. 결국 대부분의 조합원이 소외되고, 비조합원과 차별성이 사라지고, 협동조합 정신에 대한 공감대는 사라지고, 조직은 직원 혹은 직원과 결탁(?)한 소수 이사들의 전유물이 되어가고, 조합원의 소외는 더 깊어가고, 결국 조합은 문을 닫게 된다. 이런 부정의 소용돌이(Negative Vertex)를 예방하고 치유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

조직을 민주적으로 운영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민주적 운영에 관한 교육을 제대로 받아본 일도 없고, 조직을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선례를 경험한 적도 별로 없는 우리에게는 매우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엄청난 인위적인 노력과 결단이 없고서는 기존의 관성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권한이 조금만 많아져도, 역할이 조금만 확대돼도 그 권한과 역할을 이용하여 패거리를 만들어 힘을 과시하거나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하는데 활용하기 쉽다. 누구나 빠질 수 있는 꿀샘이다.

협동조합을 민주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에게 남아 있는 비민주적인 요소가 무엇인지에 대한 자각이 필요하다. 가장 대표적으로 비민주적인 경우가 독선이다. 권한을 가진 자가 이견을 무시하고 혼자,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둘째는 참여를 보장하지 않는 것이다. 조합원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와 공간을 제공하지 않는 것은 비민주적이다. 조합원이 참여하지 않는다고 투덜대지만 실상은 이들이 자유롭게 참여하여 의견을 개진할 공간을 제공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을 참여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는 논의와 의사결정에 필요한 충분한 정보를 제때에 충분한 양을 알기 쉽도록 제공하지 않는 것이다. 이견이 해소되지 않고 갈등이 지속되는 대표적인 이유가 정보 부족 혹은 왜곡된 정보 제공에 있다. 다음으로 충분히 논의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지 않는 경우이다. 다수가 참여해서 이견을 표출하고, 이슈를 설정하고 대안을 마련하기 위
해서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편의적 의사결정이다. 다수 혹은 소수의 반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합의(Consensus)를 도출하기 위한 성실한 노력 없이 다수결이나 의장 결정과 같은 편의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경우이다.

민주적 운영은 고정된 틀을 갖고 있지 않다. 시간에 따라 조직의 규모와 구성이 변하면 거기에 맞는 방식을 개발하고 선택해야 한다. 특히 조직이 커질수록 개개인의 의사결정력은 떨어지기 쉽고, 조직의 내적 분화가 일어나기 쉽다. 이를 보완할 수 있는 방식을 개발해야 한다. 조직의 규모와 구성이 변화되면 운영방식은 변할 수 있으나, 변해서는 안 되는 원칙이 있다. ‘조합원의 의사를 최대로 집적할 수 있는 방식을 택하라’는 것이다.

민주주의 이론가이자 정치학자 로버트 달의 말대로 ‘민주주의’란 ‘그 사람의 성(性), 나이, 인종, 재산, 학력 등과 무관하게 모든 사람은 의사결정에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할 권리를 갖는 것’을 의미한다. 협동조합이 1주 1표가 아니라 1인 1표를 채택했다는 것을 자본주의가 아닌 민주주의 운영원리를 채택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그 한 표는 궁극적으로 조합원에게 있다. 따라서 조직이 커가면서 대의원과 이사회를 구성하는 대의제는 당연한 것이 아니라 불가피한 선택이다. 대의제는 피할 수 있는 한 피해야 할 대상이다. 조합 운영의 깊이는 조합원의 의사가 얼마나 정확하게 의사결정에 반영되느냐에 달려있다. 그 깊이에 따라 조합의 활력과 운명이 결정된다.

주석 1) 실제 갈등형황을 조사한 사항이지만 협동조합 실명 전체를 게재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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