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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갈등 상처’ 보듬을 대체적 분쟁해결 제도 활성화_정 선 주  
작성자 운영자
작성일 2007/12/06
ㆍ조회: 5942  
‘갈등 상처’ 보듬을 대체적 분쟁해결 제도 활성화

정 선 주 (법학박사, 서울대 법대 부교수)

전철에서 내리는 내게 불쑥 장미꽃 한 송이와 종이 한 장이 건네졌다. 얼떨결에 받아 보니 공공노조가 임금협상에 관한 자신들의 주장을 시민들에게 알리는 내용이었다. 갈등이나 분쟁하면 자연스럽게 최루탄 가스, 삭발식, 붉은 머리띠가 연상되었던 나에게 20여년 전 독일에서의 이 경험은 참으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자신의 주장을 극단적인 방법이 아니라 이렇게 부드럽고 평화롭게도 알릴 수 있구나 싶어서였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 곳곳에는 크고 작은 갈등과 분쟁이 존재하고 있고 그 현장에는 여전히 물리적인 시위와 폭력적인 충돌이 일어나고 있다. 대화를 통해서 갈등을 종식시키거나 국가가 제공하는 재판이라는 통로를 통해 분쟁을 해결하기에는 너무 많은 장애물이 있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법원에서의 소송은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일반인들에게는 아직도 멀게만 느껴지니 법보다 주먹이 더 가까운 것은 아닌지 하는 유혹에 쉽게 빠져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법원 재판을 통한 분쟁해결의 한계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든 공통으로 느끼는 것인지 오늘날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대안적 분쟁해결 제도(ADR; 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을 적극 장려하고 있다. 재판을 대체하는 분쟁해결방안으로서 각광받고 있는 이 제도는 조정ㆍ화해ㆍ중재가 주 내용이다. ADR은 법원 재판처럼 갈등의 앙금이 그대로 남은 채 겉으로만 봉합된 분쟁해결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가 진심으로 마음의 벽을 허물고 대화를 통해 분쟁을 해결함으로써 분쟁발생 전 관계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 또한 신속하고 저렴하게 진행된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분쟁해결제도라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ADR의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은 민사소송사건의 약 90% 이상이 ADR을 포함한 협상에 의해 해결하고 약 5%정도만이 판결로 해결한다. 우리나라 역시 1990년 민사조정법 제정으로 법원에 의한 민사조정이 장려되고 있다. 각종 행정위원회도 조정을 통해 분쟁을 해결하려고 애쓰고 있다. 특히 대형국책사업 수행에서 종종 발생하는 주민들과의 분쟁예방과 해결을 위해 행정형 ADR 활성화가 논의되고 있고, 전문적인 분쟁해결기구 설치가 고려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ADR이 법원의 소송에 비해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제도가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없다면 활용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ADR에 의한 분쟁해결 활성화를 위해서는 여러 가지 방안이 고려될 수 있겠지만 가장 시급한 것은 ADR절차규정의 통일화와 전문조정인 양성이다.

ADR을 통한 분쟁해결의 활성화는 결과에 대한 당사자의 만족도와 신뢰를 전제로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를 위해서는 언제 어디서 어떤 형태로 ADR이 진행되든지 간에 절차진행의 기본 형태와 내용의 통일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ADR통일절차법이다. 예컨대 현재 각종 조정관련 법률에서 민법상 화해 또는 재판상 화해로 인정되고 있는 조정의 효력은 통일적으로 규정해야 할 부분이다.

ADR통일절차법의 제정은 절차의 적법성을 보장하고 자칫 잘못하면 자의적으로 진행될 수 있는 ADR의 진행방식과 내용에 대해 바람직한 모델을 제시함으로써 ADR 전체의 질적 수준을 향상시켜 국민의 신뢰를 얻고 ADR을 활성화하는 데 기여하게 될 것이다. 다만 통일절차법을 제정할 때 주의하여야 할 점은 ADR의 가장 큰 특징이 절차의 시작에서부터 종료에 이르기까지 당사자의 자율성이 전제된다는 점인 만큼 이를 최대한 존중하는 방식으로 규정해야 한다. 따라서 통일절차법은 현존하는 여러 유형의 ADR을 아우르는 공통원칙을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규정해 바람직한 절차진행 모델을 제시함으로써 당사자의 자율성을 보완 내지 보충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그리고 통일절차법의 주 대상은 ADR의 형태 중 각종 행정기관이나 단체에서 행해지는 조정이 될 것이다. 화해는 중재절차나 소송절차에서도 행해지므로 이를 대상으로 별도의 통일적인 법규정을 만들 필요가 없다. 중재는 중재법을 통해 규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통일절차법은 조정인의 중립성과 공정성, 조정절차의 비공개성과 비밀보장 등 조정의 일반적인 장점과 특징을 살릴 수 있는 내용으로 규정해야 한다.

통일절차법의 제정과 함께 ADR의 활성화를 위해 필요한 것은 전문조정인의 양성이다. 현재 각종 위원회의 조정에서는 해당분야의 전문지식을 가진, 소위 말하는 사회지도층인사가 조정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런데 바람직한 조정제도의 운영을 위해서는 조정인이 단순히 학식과 덕망을 갖춘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전문적인 조정기법 등 조정에 관해 더욱 심화된 전문교육을 받은 사람이어야 한다. 전문조정인 양성교육을 받은 사람만이 조정인이 되도록 제한하는 것은 현재 전 세계적인 흐름이기도 하다. 우리와 유사한 법체계를 가지고 있으며 ADR의 활성화를 위해 근래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에서는 최소 200시간 이상 전문조정인 교육을 받도록 하고 있다. 특히 독일에서는 연방변호사법에서 소정의 조정인 교육을 받은 변호사만이 자신을 조정인이라고 표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조정인으로 활동하는 변호사들은 자신이 어떤 전문과정을 이수했는지 밝힘으로써 조정전문가로서의 신뢰를 얻으려고 애쓰고 있다. 따라서 만일 우리가 지금처럼 조정인의 학식과 덕망에 의존하여 조정제도를 운영하는 단계를 뛰어넘지 못한다면 ADR의 활성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미국 등 ADR 선진국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조정이나 화해 또는 중재를 통해 분쟁을 해결하려는 노력은 지금보다 훨씬 더 다양한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진행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과는 달리 민간이 주도하는 ADR로 발전해 나갈 것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진정한 의미에서 법원의 재판을 대체하고 갈등과 분쟁을 원만하게 해결하는 효율적인 분쟁해결방안으로서 ADR이 자리 잡기 위해서는 통일적인 절차법의 제정과 전문조정인의 양성은 꼭 필요하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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